안녕하세요, 스포카의 프로덕트 디자이너 이유진입니다.

스포카 크리에이터 팀은 현재 리모트, 플렉서블 근무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리모트는 사무실이 아닌 공간에서 원격으로 일하는 근무 형태를, 플렉서블은 출퇴근 시간을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근무 형태를 의미합니다. (이 글에서는 두 제도를 유연 근무제라고 표현하겠습니다) 최근 들어 이러한 근무 제도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된 기사나 글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유연 근무제라고 하면, 아직 많은 사람들이 ‘리모트 근무를 한다고 말해놓고 놀아도 모르는 일 아니냐?’ 혹은 ‘플렉서블 근무를 하면 근무 시간이 엇갈릴 텐데 어떻게 원활하게 소통하느냐?’와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포카 크리에이터 팀은 2014년 처음으로 유연 근무제를 도입한 후, 현재까지 꾸준히 제도를 개선하고 발전시켜왔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스포카 크리에이터 팀이 왜 유연 근무제를 도입했는지, 또 이를 어떻게 실행하고 유지하고 있는지 설명하고자 합니다.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유연 근무제

흔히들 유연 근무제가 있는 회사라고 하면 ‘복지가 좋은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스포카는 유연 근무제를 복지의 일종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유연 근무제는 어디까지나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폭우, 폭설이 내리거나 몸이 아픈 날에는 대중교통을 타고 사무실에 도착하기만 해도 이미 진이 빠져버립니다. 병원이나 은행에 들러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면 근무 시간 내내 신경이 쓰일 겁니다. 특히나 은행처럼 일찍 닫는 곳에 가려면, 점심시간에 끼니를 거르고 다녀오거나 큰 맘을 먹고 반차까지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만 융통성을 발휘하면 훨씬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쓸 수 있습니다. 리모트 근무를 하면 출근길에 낭비되는 에너지와 시간을 줄이고, 매일 같은 사무실이 아닌 새로운 자극이 있는 공간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플렉서블로 근무하면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하고, 자신의 컨디션이 최상인 상태에서 업무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오전에 물리 치료를 받거나 운동을 하고 출근하는 일이 잦습니다. 6시쯤 문을 닫는 병원의 특성상 플렉서블 근무가 없었다면 일주일에 2번씩 물리 치료를 받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고, 오히려 좋지 못한 컨디션으로 사무실에 억지로 앉아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둘 중 어느 쪽이 업무 생산성에 더 긍정적일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폭설, 태풍 등 험한 날씨가 예상되는 날은 오히려 리모트를 권하기도 합니다.

사무실 출근이 익숙한 사람 대부분에게 리모트 근무는 여전히 낯선 제도이기에 스포카 크리에이터 팀은 2014년부터 이를 점진적으로 도입했습니다. 가장 규칙이 엄격했던 ‘일주일에 반나절 1회’ 리모트로 시작해, 2주에 한 번씩 규칙을 고쳐나가며 ‘일주일에 하루’, ‘일주일에 반나절 4회’ 등 리모트 가능 시간을 점점 늘려나갔습니다. 또 초기에는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동시에 리모트 근무를 하는 인원을 제한하는 등 좀 더 엄격한 규칙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의 반복과 수정을 거쳐 현재는 미리 보고만 하면 사용 인원과 시간에 제한이 없는 자율적인 시스템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유연 근무제가 수월하게 자리를 잡는 데에는 아래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툴의 공이 컸습니다.

유연 근무제를 위해 사용하는 툴

리모트와 플렉서블 근무는 모두 비동기적으로 일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와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일하게 되는 것이죠. 한 공간에서 일할 때는 의논해야 할 이슈가 있으면 자리로 찾아가 대화하거나 회의를 진행하면 됩니다. 하지만 비동기적으로 일할 때는 음성이 아닌 문자 커뮤니케이션이 주가 되어야 하며, 모든 것이 기록되고 문서화되어 남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스포카에서는 Slack, Jira, Confluence 등의 협업 툴들을 적극 사용합니다.

스포카에서 비동기 협업을 위해 사용하는 수많은 툴들

Slack을 통해 서로 다른 장소에 있어도 즉각적인 소통이 가능하며, Jira를 통해 시차가 있어도 한 이슈를 지속해서 의논할 수 있습니다. 모든 회의록은 Confluence에 기록되어 언제 어디서든 열람할 수 있고, 원격으로 회의를 진행해도 팔로업이 가능합니다. 이 외에도 스포카에서는 위에 있는 이미지처럼 수많은 협업 툴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유연 근무제에 이러한 툴을 활용하는 일련의 과정을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1. 일정 공유하기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 집에서 리모트로 근무한 후, 오후부터는 회사로 출근해 근무하려 한다고 가정합시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도록 Slack의 ‘근무 시간’ 채널에 이를 공지하는 것입니다. 유연 근무 여부는 최소한 당일 아침 10시 전에 공지해야 하며, 이미 회의나 워크숍이 잡혀있는 시간에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스포카에서는 Zapier를 통해 Slack과 구글 캘린더를 연동하여, Slack에 근무 시간을 쓰면 구글 캘린더에 자동으로 기록되도록 설정해두었습니다.

아침 10시가 되면 Slack의 근무 시간 봇이 모든 구성원의 근무 계획을 공지합니다. 모자라거나 추가로 근무한 근무 시간은 주 40시간 내에서 자유롭게 조정하며 일할 수 있으며, 누군가의 감시나 감독 없이 신뢰를 바탕으로 할당된 시간을 채웁니다.

2. 업무 진행하기

아침 9시가 되면 근무를 시작한다는 메시지를 Slack에 남긴 후 집에서 리모트로 일하기 시작합니다. Confluence에 내일 있을 미팅의 회의록을 작성하고, Jira에서 새로운 이슈를 진행합니다. Jira와 Confluence 또한 Slack과 연동되어 있어 이슈의 상태가 변경되거나 댓글이 달리면 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격으로 일을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쉽게 파악하고 동기화할 수 있죠.

또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하여 Slack에 본인이 멘션되었을 경우 10분 안에는 대답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가끔 출근 시간의 차이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속도가 늦어질 때가 있는데, 이런 때에는 양해를 구하고 Slack에 멘션을 걸어 묻거나 리마인더 봇을 적극 활용해 커뮤니케이션을 잊지 않도록 넛지를 주곤 합니다.

주말이나 늦은 시간에 근무할 때 논의할 이슈가 생기면 리마인더를 걸어 평일에 커뮤니케이션 합니다.

3. 회의 및 스탠드업

기본적으로 회의가 있는 날에는 리모트 근무를 지양하지만, 가끔 예상치 못한 회의가 생기거나 여행을 떠난 스포칸이 다른 지역에 일주일 이상 머무르며 리모트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땐 함께 Confluence 회의록을 보며 Slack Calls을 통해 화상 회의를 진행합니다. 최근에는 회의가 있는 날 무조건 리모트를 금지하지 말고, 회의 또한 원격으로 진행하자는 의견이 있어 이에 맞는 환경과 장비를 조성하고자 준비 중입니다.

또한 스포카에서는 팀원끼리 어떤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지, 컨디션은 어떤지 파악하는 스탠드업(혹은 데일리 스크럼)을 매일 진행합니다. 초기에는 정해진 시간에 실제로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형태였지만 점차 Slack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형태로 바뀌었고, 현재는 스탠드업 앨리스라는 Slack 앱을 사용하여 챗봇의 형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스탠드업을 읽었는지는 이모지로 표시하며, 아젠다가 있으면 Slack에서 논의하기 때문에 근무 형태에 구애받지 않지 않고 스탠드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규칙이 아닌 신뢰

위에서 이야기한 툴들은 비동기적으로도 일을 잘하기 위한 것이지, 일을 열심히 하는지 감시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정해진 규칙대로 Slack 멘션에 10분 안에 대답하지 않는다고 해서 벌점이 쌓이는 것도 아니고, 주 40시간의 근무 시간을 채우는지 감독하는 사람이 따로 있지도 않습니다. 스포카가 이처럼 유연 근무제에 관련된 규칙을 최소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가장 적은 비용’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규칙을 만들고 지키는 데 에너지를 쓰기보다는, 그 에너지를 ‘스스로 잘 해낼 만한 사람’을 신중하게 채용하고 기존의 문화를 지켜나가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죠.

리모트 근무를 시행하는 많은 회사에서 이야기하는 문제점은, 오히려 직원들이 역으로 초과 근무를 하고 본인의 생산성에 죄책감을 느낀다는 점입니다. 사실 사무실에 출근해서 일할 때도 한 가지 이슈에 오랜 시간을 소요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평소에는 이런 점을 거의 의식하지 않지만, 같은 상황에서 리모트 근무를 할 땐 자신의 생산성을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없어 불안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의 이슈라도 ‘완료’ 상태로 만들고, 커밋 하나라도 푸시해야 하지 않나 하는 압박감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런 부작용을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유연 근무제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는 필수입니다.

중요한 또 한 가지는 팀의 상황에 맞춰 계속해서 규칙을 업데이트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스포카는 유연 근무제의 규칙과 방식을 여러 번 수정하며 실험해왔습니다. 근무 시스템이 어느 정도 정착된 지금도, 매달 진행되는 크리에이터 워크숍을 통해 어떻게 더 나은 방식으로 근무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개선해나가고 있습니다. 더구나 개발팀의 규모나 구성은 회사마다 다르기에 스포카의 방식이 다른 회사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유연 근무제 도입을 고려 중인 회사라면, 우선 해당 회사와 구성원들의 특성을 세심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맺으며

스포카에서 유연 근무제를 경험하며 ‘회사에 다니고 있어도 내 시간의 통제권은 여전히 나에게 있다’는 감각이 생각보다 큰 안정감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시간의 통제권을 회사가 아닌 개개인에게 돌려주고 그만큼의 책임 또한 부여하는게 유연 근무제의 핵심이 아닐까 합니다.

여러분의 회사가 유연 근무제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면 이 글이 작은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이미 유연 근무제를 시행하는 회사라면, 어떤 방식으로 이를 도입하고 운영하고 있는지 여러분의 이야기 또한 댓글로 알려주세요. :)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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